요코하마 빨간 벽돌 창고의 역사

에도 시대 200년 이상에 걸쳐 이어진 쇄국이 끝나고 세계를 향해 문호를 개방한 일본. 그 교역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된 것이 요코하마였습니다. 요코하마 빨간 벽돌 창고는 이러한 시대의 요청에 따라 탄생하여 격동의 20세기를 거쳐 현재에 이릅니다. 과거와 현재의 사진을 비교하며 그 역사를 되돌아봅니다.

1. 요코하마 개항ㆍ요코하마 빨간 벽돌 창고 탄생

요코하마 개항, 새로운 시대의 개막

1859안세이 6년
외국 함선을 인솔한 페리의 내항, 미일 화친조약, 미일 수호통상조약의 체결을 거쳐 에도 시대 동안 오래 지속된 쇄국시대가 끝났습니다.
100가구 인구 5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던 요코하마 마을이 개항의 장소로 지정됨에 따라 요코하마의 도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시대는 메이지로 옮겨져, 해외와 무역하기 위해 항구의 건설이 필요하고 인구도 급격하게 증가했기 때문에 근대적인 도시 조성이 급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페리 제독 요코하마 상륙 그림’(요코하마 개항 자료관 소장) 요코하마 빨간 벽돌 창고의 탄생

요코하마 빨간 벽돌 창고 탄생

1911메이지 44년
개항 초기의 요코하마에는 선박이 도착할 수 있는 안벽이 없어 본격적인 부두를 건설하는 것이 국가의 중요 과제였습니다. 메이지 정부에 의한 제1기 축항 공사로 1896년(메이지 29년)에 데쓰산바시(오산바시의 전신)가 완성되었고, 외국 무역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취급 화물의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제2기 공사로 1899년(메이지 32년)에 동양 최초의 접안식 부두로 신코 부두의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보세 창고(※1)로서 현재의 요코하마 빨간 벽돌 창고(당시에는 요코하마 세관 신코 부두 창고로 불렸습니다)가 만들어졌습니다. 신코 부두는 상옥(※2), 창고, 크레인, 철도 등을 갖춘 일본 최초의 근대적인 항만 시설입니다.
2호 창고는 1907년(메이지 40년)에 착공, 1911년(메이지 44년)에 준공, 설계자는 대장성 임시 건축부를 이끌던 쓰마키 요리나카였습니다.
  • ※1 ‘보세 창고’란, 해외에서 반입된 수입 수속이 끝나지 않은 물자를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시설을 말합니다.
  • ※2 ‘상옥’이란 배와 창고 사이의 화물 하역이나 일시 보관에 사용되는 시설을 말합니다. 창고와 다른 점은 벽이 없거나 기둥과 지붕만 있는 건물이라는 것입니다.
1913다이쇼 2년
1호 창고는 1908년(메이지 41년)에 착공, 1913년(다이쇼 2년)에 준공. 완성된 빨간 벽돌 창고는 일본 최초의 화물용 엘리베이터와 소화 수전(스프링 쿨러), 방화문 등을 갖춘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최신예의 창고였습니다. 내진을 위해 정련철 구법이라는 벽돌 속에 철재를 내장하는 당시 최신의 기술이 채용되었습니다. 벽돌은 모두 일본 국산품으로, 2호 창고에만 318만 개 가까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최신 기술이 도입된 국가의 모범이 되는 창고로 2개의 창고가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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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시의 2호관 ‘벽돌 구조의 창고 전면’(요코하마 미나토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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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 시의 1호관(요코하마시 항만국 소장)

2. 간토 대지진ㆍ복구

간토 대지진 발생, 창고 반괴

1923다이쇼 12년
9월 1일에 발생한 간토 대지진으로 요코하마항의 시설도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빨간 벽돌 창고도, 2호 창고가 무너지는 것은 면했으나 1호 창고는 중앙 부분이 무너지는 등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지진으로 많은 벽돌 구조의 건물이 무너졌으며, 그 후에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현존하는 벽돌 구조의 건물은 그 수가 얼마 안 되며, 귀중한 건축 유산입니다.
피해를 입은 빨간 벽돌 창고(요코하마 도시 발전 기념관 소장)

복구 공사 종료, 재스타트

1930쇼와 5년
간토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1호 창고는 거의 절반 크기로 축소되어 안쪽에 철근 콘크리트의 보강벽이 설치되었으며, 2호 창고도 내진성을 높이기 위해 크레인이 철거되는 등 개수 공사가 실시되었습니다.
지진 재해 부흥 후 요코하마 항(요코하마 도시 발전 기념관 소장)

3. 접수ㆍ해제ㆍ재가동

종전, 미국 접수, 미군 항만 사령부로 사용

1945쇼와 20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 해외와의 무역은 단절되고 빨간 벽돌 창고는 전쟁의 군사물자 보급기지가 되었습니다. 종전 후에는 요코하마 도심부의 많은 시설과 함께 GHQ에 접수(※)되어 미군의 항만 사령부로 사용되었으며, 사무소나 식당이 놓여져 항만 창고의 기능은 멈추었습니다.
  • ※‘접수’란 강제적으로 몰수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본은 패전 후 중요 시설이나 건물을 몰수당했습니다.
접수ㆍ하역 붉은 벽돌 앞(요코하마시 항만국 소장)

접수 해제, 항만 창고로 재가동

1956쇼와 31년
약 10년간 이어진 접수가 끝나고 1호 창고는 세관 창고, 2호 창고는 공공 상옥이 되었습니다. 해외와의 거래가 다시 시작되어 입항 선박 톤 수, 취급 화물량 등 전쟁 이전의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1974년 당시의 주요 취급품은 수입은 양모, 수출은 타이어, 광학기계, 합성수지 등으로 연간 90,000t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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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30년대ㆍ빨간 벽돌 창고의 앞을 달리는 SL(요코하마 도시 발전 기념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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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40년대ㆍ반송되는 0계 신칸센(요코하마시 항만국 소장)

4. 창고 용도의 폐지

창고의 보존 검토

1970쇼와 45년 무렵
쇼와 40년대 이후 해상 운송의 컨테이너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대형 컨테이너선에 대응한 심수형의 긴 안벽, 갠트리 크레인, 광대한 컨테이너 야드를 갖춘 새로운 부두가 정비되는 상황에서 1976년에는 취급 화물량이 격감했습니다. 창고의 역할이 저하되어 용도 폐지나 건물의 해체도 상정되는 가운데 요코하마시의 도시 재생 계획에서 빨간 벽돌 창고의 보존이 검토되기 시작했습니다.
요코하마시는 요코하마역 주변과 간나이, 이세자키초라는 2개로 분단된 도심부를 일체화시켜 도시 기능을 확충하기 위해 1983년(쇼와 58년)에 ‘미나토미라이 21’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주오 지구(미나토미라이역 주변)에는 랜드마크 타워를 비롯한 근미래적인 도시가 조성된 한편, 신코 지구는 항구의 심벌인 빨간 벽돌 창고를 중심으로 역사와 경관을 살린 도시 조성이 추진되었습니다.

창고 용도 폐지, 휴면으로

1989헤이세이 원년
빨간 벽돌 창고의 취급 화물량은 그 후에도 계속 감소했으며, 1986년에는 연간 2,000t, 수입은 소금에 절인 채소와 대나무 빗자루, 수출은 복사 기계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1989년(헤이세이 원년)에 창고 용도는 폐지되어 빨간 벽돌 창고는 80년의 역사에 잠시 막을 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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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요코하마항역에서 보는 빨간 벽돌(요코하마시 항만국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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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코 부두 입구(요코하마 미나토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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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벽돌 창고 앞 선로(요코하마 미나토 박물관 소장)

옛 요코하마항역에서 보는 빨간 벽돌(요코하마시 항만국 소장)

빨간 벽돌 건널목(요코하마 미나토 박물관 소장)

5. 보존, 그리고 부활로

요코하마시가 국가로부터 취득

1992헤이세이 4년
1992년(헤이세이 4년)에 보존을 검토한 요코하마시는 국가와의 교섭 끝에 빨간 벽돌 창고의 토지와 건물을 취득하여 ‘보존ㆍ활용 검토 위원회’를 설치, 보존 활용을 위해 큰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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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된 2호관(요코하마시 항만국 소장)

보존을 위한 개수 공사가 시작되다

1994헤이세이 6년
빨간 벽돌 창고는 간토 대지진 이후 대규모 보수가 실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격적인 개수 공사가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지붕 개수와 창 및 차양의 복원, 낙서 제거, 철골을 이용한 구조 보강 등 개수 공사는 1999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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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개수(요코하마시 항만국 소장)
낙서 제거(요코하마시 항만국 소장)

요코하마 빨간 벽돌 창고 사업 컨셉트 결정

1999헤이세이 11년
보존 공사와 병행하여 검토가 진행되던 사업 컨셉트가 결정.
요코하마다운 문화를 창조하여 시민이 휴식하고, 활기찬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항구의 활기와 문화를 창조하는 공간’을 목표로 사업을 실시하여 1호 창고는 주로 문화적 이용, 2호 창고는 주로 상업적 이용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활용을 위한 내부 개수 공사

2000헤이세이 12년
가스, 전기, 수도 등의 인프라와 문화시설ㆍ상업시설에 필요한 설비를 정비하기 위한 내부 개수 공사가 실시되었습니다. 새로운 기능을 갖추면서도 역사적 건조물로서의 기억을 새기기 위해 골함석 천장, 방화문, 행거도어, 계단실 등 건설 당시의 부재를 간직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내부 개수의 모습(요코하마시 항만국 소장)

6. 다시 태어난 빨간 벽돌 창고

리뉴얼 오픈

2002헤이세이 14년
약 9년간에 이르는 보존. 활용 공사가 종료되고 2002년(헤이세이 14년) 4월 12일에 빨간 벽돌 창고는 되살아났습니다. 1호관은 홀과 전시 공간을 갖춘 문화시설, 2호관은 레스토랑 및 매장 등이 모인 상업시설입니다. 이 해에 방문객은 569만 명에 이르러 다시 태어난 요코하마 심벌의 새로운 출발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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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내부(요코하마시 항만국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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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관 3F 모션 블루 앞(다케나카 공무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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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관 3F BEER NEXT 내(다케나카 공무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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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관 계단(요코하마시 항만국 소장)
2007헤이세이 19년
경제 산업성의 ‘근대화 산업 유산’으로 일본의 산업 근대화에 크게 공헌하여 요코하마항 발전의 발자취를 이야기하는 근대화 산업 유산 중 하나로 인정되었습니다.
근대화 산업 유산
2010헤이세이 22년
아시아 태평양 지역 문화 유산의 보존ㆍ복구를 위한 민관 협력을 권장하여 뛰어난 성과를 기리는 ‘유네스코 문화 유산 보전을 위한 아시아 태평양 유산상’ 우수상을 일본 국내에서 최초로 수상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 유산 보전을 위한 아시아 태평양 유산상
2011헤이세이 23년
2호 창고 건설 100주년, 통산 방문객 5,000만 명을 돌파.
2012헤이세이 24년
리뉴얼 10주년.
창건 100주년을 기념한 우산 문자
2013헤이세이 25년
1호관 창건 100주년.
통산 방문객 수 6,000만 명 돌파를 기념하여 ‘디지털 족자’ 투영.
리뉴얼 이래 역대 최다 연간 방문객 수 630만 명을 기록.
디지털 족자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다음 100년을 향해.